"땅만 보고 다녀야겠어요"…여의도 직장인 덮친 '공포' [돈앤톡]

입력 2023-11-01 08:20   수정 2023-11-01 18:53


'싱크홀.' 자주 다니는 길에서 갑자기 바닥이 꺼진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여의도 중심부에서 싱크홀이 발생했습니다. 여의도엔 초고층빌딩인 '마천루'가 곳곳 세워지고 이미 있던 건물들도 더 높이 재건축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지만, 여의도 직장인들은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싱크홀에 빠지는 게 더이상 남 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5일 오전 11시께 IFC몰 앞 도로 내 횡단보도를 잇는 교통섬에서 가로 0.5m·세로 0.3m·깊이 2.5m의 구멍이 생겼습니다. 영등포소방서에 따르면 이 사고로 부근을 걷던 30대 남성이 허벅지에 찰과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당시 구청에선 이르면 하루 만에 사고의 원인을 규명해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등포구청 도로과 관계자는 1일 기자에 "대부분은 지하 하수관로에 문제가 생긴 경우인데 이번은 아직 확답을 주긴 조심스런 상황"이라며 "계속해서 원인을 파악하고 있지만 발표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서울시 차원뿐 아니라 구청에서도 지반조사를 나가고 있긴 하다"면서 "앞으로는 보다 주기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구청은 주변 하수관로 CCTV를 조사하고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를 시행할 계획입니다.

여의도 싱크홀은 2018년 3월 사고 이후로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작년 7월에도 최근 사고와 비슷한 지점에서 2.5m 싱크홀이 생겼었는데요. 당시 구청은 사고 원인이 주변 지하매설물 이상 때문이라고 추정했습니다. 1년여 만에 생긴 같은 깊이의 싱크홀, 여의도 사람들은 사고가 더 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여의도 직장인·주민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도 연일 들썩입니다. '사방에서 지하철 공사를 하니 저 부근 지날 때마다 항상 불안했는데…결국 일이 터졌다', '마구잡이 개발을 막을 순 없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무슨 죄냐', '매일 꼭 지나야하는 곳인데 아찔하다', '곧 재건축 줄줄이 시작될 텐데…땅만 보고 다녀야겠다', '출근하면서 (사고 현장) 옆을 지나는데 너무 불안했다' 등 추가적인 싱크홀을 걱정하는 글들이 상당수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의도에 고층 빌딩들 위주로 들어선지 한두 해 된 것도 아니고 지금 와서 더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인다'는 등의 의견도 눈에 띕니다.

문제는 이들의 불안이 괜한 기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의도가 싱크홀을 일으키는 요건들을 빠짐 없이 갖췄다는 이유에선데요. 싱크홀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여의도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지하안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일 기준 지난 3년 동안 전국에선 지반침하사고가 455건이나 발생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땅에 구멍이 생기고 있는 겁니다. 이 가운데 서울에서 발생한 사고만 51건으로 비중이 11.2%에 달합니다.

갑자기 땅이 푹 꺼진다고 모두 싱크홀은 아닙니다. 지반공학 전문가들은 싱크홀과 같은 의미로 '지반침하'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데요. 현행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구멍이 면적 1㎡ 이상 혹은 깊이 1m 이상이거나, 사망자·부상자·실종자가 발생한 경우를 지반침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나라가 '사고'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보시스템에 공시돼야 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작년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도심에서 싱크홀이 발생하는 원인을 △지반이 연약한 경우 △상·하수관 손상으로 누수가 발생하는 경우 △지하수의 흐름이 바뀌어서 빈 공간이 생긴 경우 등으로 분석했는데요. 여의도는 이 모든 경우에 충족되고 있단 지적이 이어집니다.

여의도는 흙과 모래로 매립된 곳이어서 지반이 연약한 편입니다. 매립지 조성에 사용된 흙이 단단하게 다져지지 않으면 오랜 시간에 걸쳐 가라앉게 되는데, 시설물 하중이 더해지면 그 속도가 빨라집니다. 상·하수관로 누수는 굴착공사 중 매설된 관로를 손상시킬 때 일어납니다.

지하수 흐름이 바뀌는 경우는 전철과 도로, 상가, 주차장 등 대규모 시설을 지하에 지을 때 주로 발생합니다. 여의도처럼 지상공간에 이미 건물을 놓을대로 놓은 대도시일수록 지하 개발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데요. 지하공간을 과도하게 개발하면 지하수의 자연적인 흐름이 바뀌어서 지하에 빈 공간이 생기는데, 지하수가 버텨오던 지반의 무게를 이 공간이 당해내지 못하면 무너지게 됩니다. 이게 싱크홀로 보여지는 것이고요.

전문가들은 여의도 싱크홀이 앞으로 보다 짧은 주기로 빈발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상황들이 이런 결과를 암시하고 있다는 건데요. 여의도 파크원과 더 현대 서울, 브라이튼 복합 시설 등 대규모 공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고 이들은 대부분 지하 연결통로로도 이어진 상태입니다.

여의도역 바로 앞에 또 하나의 마천루 TP타워(사학연금)도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역시나 지하철 연결통로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2027년 준공 예정인 오피스텔 아크로 여의도 더원의 경우에도 지하 7층~지상 29층 규모로 들어설 계획입니다. 대대적인 개발 계획이 또 있습니다. 추가 개통 예정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과 신안산선·서부선 등이 확충되는 경우 총 6개 노선이 여의도에 정차하게 됩니다.

신규 건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래된 아파트 재건축도 곧 시작되는데요. 50년도 넘은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최고 층수 65층, 대교아파트 최고 59층, 진주아파트 최고 58층, 한양 아파트 최고 54층, 삼부아파트 최고 56층 등으로 재건축될 예정입니다. 여의도 내 가장 오래된 아파트에서 초고층의 새 주거 단지로 탈바꿈하는 겁니다. 여러 주민들 사이에서 재건축 기대감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지반이 버틸 수 있을 것이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속도가 좀 늦어지더라도 지하수위를 조절해 가면서 현장 공사를 해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됩니다. 싱크홀이 사전 예방이 어려운 재난인 만큼 보행자로선 최대한 건물과 가까이 걸을 필요가 있단 조언도 나옵니다.

류기정 한국지하안전협회 명예회장은 "지하공사를 하면 토압이 수평방향으로 작용해서 무너지는 영향이 가장 크며, 지하수위를 빼내는 과정에서 주변부 수위까지 빠지는 경우도 상당하다. 범람한 모래들의 퇴적층인 서울 여의도와 잠실에선 앞으로 더 큰 빈도로 싱크홀이 생길 것"이라며 "공사 시 작업자들이 물을 함부로 퍼내지 않도록 공사현장 상시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박인준 한서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수년 전부터 여의도엔 이런 싱크홀이 발생하고 있었다. 지금의 우려 상황은 예견된 것이며 난개발이 계속되는 한 싱크홀은 당연히 더 빈발할 전망"이라며 "개발을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니 당장은 보행자가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싱크홀은 하수관과 우수관이 지나가는 곳에서 터지는데 이는 도로변과 근접해 있다"며 "도로변과는 거리를 두고 건물 가까이에서 보행하는 게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쉼 없이 세워지는 마천루에 하늘을 향한 기대감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땅을 향해선 두려움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여의도를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겠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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